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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을 찾아서

태백역 인근 짬뽕집, 열라용 짬뽕의 <해물짬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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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여행은 항상 즐겁다. 그러나 시골 사람들이 모두 친절하고 인심이 푸짐할 것이라는 망상은 버리는 것이 낫다. 이 세상에 그런 도시는 없으며, 그런 환상을 가지는 것은 그 동네에 대한 예의도 아닌 것 같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탄 마을 버스에서 승객들과 버스기사가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보며, 나는 행복했던 여행을 망치기 싫어 두 정거장을 일찍 내려버렸다. 할머니가 자기 쪽으로 넘어지자 쌍욕을 내뱉던 남자 승객을 잊지 못한다. 그래, 이 순간, 갑자기 짬뽕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황지연못 인근의 열라용 짬뽕. 가게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요즘 만들어지는 가게의 이름같지 않고, 한 10년 전의 감성을 담고 있는 이름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 말은 무엇인가? 최소 10년 이상 이 자리를 지키며 장사를 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사를 그렇게 오래 했다는 것은 이 가게의 짬뽕이 맛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질보다는 양과 싼 가격으로 장사를 해도 오래 버틸 수 있겠지만, 그것은 직접 확인해봐야 아는 것이었다. 나는 열라용 짬뽕집으로 들어갔다.

용호상박. 입구의 그림이다. 왠지 이 가게의 내력을 말해주는 듯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아마도 왼쪽의 용 이름이 "열라용"이 아닌가 싶다. 그 오른쪽의 태백산 호랑이도 짬뽕을 먹은 뒤 이빨 사이에 낀 고춧가루를 확인하려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나는 이런 옛 감성의 그림들을 아주 좋아한다. 이런 감성을 낼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의 일부를 팔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짬뽕의 맛도 범상치 않을지 기대가 된다.

혼자 왔냐는 서빙 아주머니의 말씀에 짤막하게 대답한 뒤 자리에 앉았다. 가게는 세로로 아주 길었는데, 마치 제우스 신전을 가로질러 한참을 걸어가야 제우스 동상이 있는 것과 유사했다. 장엄하게 가게를 장식하고 있는 그림액자를 지나 가게 끝으로 가니, 주방장님과 주인님이 풍기는 분위기가 범상치 않았다. 짬뽕에서 불맛이 나지 않으면 주방에 불을 질러서라도 불맛을 만들어내실 것만 같은 날카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단무지와 양파는 셀프이므로 직접 가져다 세팅했는데, 서빙 아주머니가 예쁘게 담았다며 칭찬을 해주신다. 확실히 서울의 평범한 짬뽕집보다는 정이 있다.

드디어 나온 짬뽕. 꽃게, 바지락, 굴, 홍합이 들어갔다. 면의 색깔을 살펴보니 허연색이 아니라 어느정도 짬뽕 국물이 스며든 붉은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나와야 면과 국물이 따로 놀지 않고 입 안에서 조화를 이루게 된다. 나는 면부터 모두 먹고 국물에 밥을 살짝 말아먹는 스타일이므로, 면을 맛보기 시작했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 아닐까. 면이 국물이 스며드는 것을 거부하면 맛이 따로 놀게 되듯, 직장인도 어느 정도 조직문화에 젖을 줄 알아야 부드럽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결과는 대만족.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흔한 짬뽕 체인점보다 훨씬 맛있었다. 국물은 조금 달콤한 편이나, 그리 맵지는 않고 감칠맛이 났다. 국물에서 겉부분이 살짝 탄 양파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서, 제대로 요리한 짬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 때부터 불판에 야채를 살짝 탈 정도로 볶으신 뒤 국물을 부어 만들기 시작하셔서 그런지 아주 맛있었다. 중간 중간 전화가 올 때마다 주인분께서 "네, 열라용입니다." 라고 전화를 받으시는 것도 재밌었다. 그런데 탄 음식은 몸에 안좋다는데, 너무 많이 먹은 것이 아닐까.

열라용 짬뽕을 뒤로 한 채, 나는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태백역으로 다시 출발했다. 역시 뭔가 스트레스 받는 일이 생길 때는 짬뽕을 먹는 것이 좋다. 짬뽕을 먹으면 콧물이 나오게 되는데, 여기에 스트레스 호르몬이 섞여 함께 배출되기 때문이리라. 단, 짬뽕의 나트륨 함량은 일반적인 멸치국수보다 훨씬 높으므로, 건강을 위해서는 매일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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