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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멘탈관리와 상담

(강연 후기) 39세에 치매 진단... 단노 도모후미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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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꿍의 추천으로 함께 사단법인 '다른몸들'에서 주최한 강연에 갔다. 처음에는 대체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몰랐는데, 다 듣고 나니 정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노 선생님은 일본에서도 활발하게 강연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번 한국 방문 때도 서울, 인천 지역에서 다수의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단노 도모후미 선생님은 일본에서 잘 나가는 자동차 세일즈맨이었다. 그런데, 39세에 도요타 자동차에서 일하고 있던 중 치매진단을 받게 된다. 이 강의는 단노 선생님이 치매진단을 받고도 지금까지 활기차게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내용이었다.

단노 선생님은 회사에 다니던중 건망증이 심해져 병원에 갔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치매 진단을 받게 되자 크게 좌절했다고 한다. 부인과 2명의 딸을 어떻게 부양해야할지,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해서 매일 밤 울었다고 한다.
강연을 하는 단노 선생님의 증상이 그리 심하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는 지금도 집 주소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양치질을 3~4번씩 하기도 하며, 직장 동료들이나 가족들의 얼굴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단노 선생님의 강연 중 인상 깊은 것이 정말 많았는데, 간략하게 정리를 해보고자 한다.

1. 도요타 자동차는 치매에 걸린 단노 선생님을 해고하지 않고, 다른 업무에 배치시켜 주었다. 또한 회사 소속 "치매 활동가"라는 직종을 아예 새로 만들어서, 계속 일할 수 있게 해주었다.

2. 아직 치매를 치료하는 약은 나오지 않았고, 단노 선생님도 치매 진행을 늦추는 약을 꾸준히 복용해오고 있다. 치료약은 없으나, 약을 제 때 먹으면 단노 선생님처럼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3. 사람들은 치매에 걸리면 요양원 같은 시설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증이 아니라면 치매환자들도 충분히 지역사회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단, 사회적으로 치매 환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4.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계속 다시 뛰어보라고 하면 되겠는가? 그것은 치매에 걸린 사람에게 계속 뭔가를 기억해보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치매에 걸린 사람에게 "오늘 뭐했는지 기억 나?" 라고 묻지 말고, "오늘 뭐 먹고 싶어?" 오늘 어디 가고 싶어?" 같은 질문을 하라.

5. 단노 선생님은 치매 당사자가 다른 당사자를 돕는 "오렌지 도어"라는 자조 그룹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치매 환자를 상담하고 있으며, 가족들이 치매 환자를 올바로 대할 수 있는 방법을 전파하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의 "희망대사"로 임명되어 치매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치매 환자라서 못하게 되는 것도 있지만, 치매 환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도 이렇게 많다고.

6. 그는 자신의 주소와 가족들의 연락처가 적힌 목걸이를 메고 다닌다. 그가 길을 잃어버리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 목걸이를 보고 그를 도와주기도 한다. 길을 잃어서 한참 늦은 시간에 겨우 집으로 돌아와도 가족들은 그를 원망하거나 혼내지 않는다. 치매로 인해 생길 수밖에 없는 일상의 수많은 실패를 탓하기보다는, 그가 작은 성공을 쌓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치매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치매 환자들을 이해하고,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가족들이 치매환자를 대하는 더 나은 방법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단노 선생님이 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39살에 치매 진단을 받는다면 어땠을까? 정말 크게 좌절하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것 같다.
단노 선생님도 대단하지만, 단노 선생님이 이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일본의 회사, 이웃들, 가족들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사회와 비교한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 어떤 수준일까? 우리는 그런 준비가 되어있나?

누구나 치매에 걸릴 수 있다. 단노 선생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젊은 사람도 치매에 걸릴 수 있다. 치매와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목표를 위한 사회 시스템 내지는 정책을 만드는 회의 자리에 치매 당사자는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대신, 치매 환자의 가족과 병원, 시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낸다. 치매 환자는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매 정책은 치매 당사자가 아니라 치매 환자의 가족과 병원, 시설 등이 중점이 될 수 밖에 없다. 정작 치매 환자 본인은 시설로 들어가고 싶지 않고, 독립해서 살고 싶은데, 치매 정책은 시설 중심으로 계속 짜여지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단노 선생님 같은 분이 나타나서, 치매 당사자들이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한 강의를 들려준 단노 선생님과 주최 측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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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866956.html#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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