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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기타

<호모 쿵푸스(개정증보판)>, 고미숙, 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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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공부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돈도 없고 외로워 죽겠는데 무슨 얼어 죽을 공부인가? 아, 물론 그 공부가 토익공부고, 자격증 공부고, 학점 따기 위한 암기식 공부고, 60분에 100문제를 풀어야 하는 공단 NCS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 공부라면 오히려 미친 듯이 해야 이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 아닌가? 아, 패배주의에 찌들어 있는 내가 배가 불러서는 노력이 부족한 나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 뿐인가? 젊은 사람들이 책을 안 읽으니까 책 좀 읽으라고? 그건 또 무슨 미친 소리인가. 책 읽을 시간에 돈이나 더 모아야 한국사회에서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게 상식인 세상을 만들어 놓고 왜 그 속에 있는 개개인만을 그렇게 쉽게 비난하는가? 노인빈곤율, 자살율 최고인 "멋진 신세계" 아닌가? 사회적 안전망이 충분한 사회라고 말 할 수 있는가? 쓸 데 없는 외모지상주의, 학벌주의 강요하지 않는 합리적인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다지.. 대다수의 시민들이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사회인가? 그것도 글쎄.. 최대한 돈 쓸 곳을 줄여야 하는 판에 연애? 결혼? 현대 한국사회에서 그런 건 돈이나 충분해진 다음에야 가능해진 것 아닌가? 집도 없고 직업도 없는데 가족을 꾸리고 싶다고 한들 그게 쉬운 일인가? 주변에서는 얼마나 많은 눈치를 주는가? 눈치 보는 사람이 자존감이 없고 멍청해서 눈치를 보는건가? 대체 그런 기본적인 욕구도 충족이 안되는데 무슨 우주의 진리를 탐구하고, 내 삶의 의미를 찾고, 꿈을 쫓는가? 그런 걸 안한다고 해서 한국사회에서 청춘들이 다 게을러졌네. 패기가 없네. 같은 말을 할 수 있는가? 참 미친 소리가 아닐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들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내가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공부가 내 삶을 변화시키고, 그런 고난을 뚫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물론 이 책은 그보다 많은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고미숙이라는 작가님에 대한 좋은 말도 많지만, 비판도 많다. 이 책을 읽고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면, "답은 이것인데, 너는 이것도 모르니? 잔말 말고 날 따라해!" 라는 말을 듣는 것 같다. 고미숙 작가의 글을 보고 그냥 수다 떤 것을 실어 놓은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던데, 이 책을 보았을 때 그 비판이 절대 무리는 아니다. 또, 정신병에 대한 편견도 가지고 있으신 것 같다. 우울증과 자폐증에 대해서 하신 말씀을 보자. 솔직히 화가 났다. 자폐증이 과연 저렇게 생겨나는 걸까? 한 편, 나는 한의학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편인데, 책 한 편에 한의학의 원리를 별다른 검증도 없이 그대로 실어 놓으셔서 당황스러웠다. 고미숙 작가님이 '노동감수성' 도 부족하다는 평도 있다. 아래에 보면 '에너지장'이 어떻다는 말도 하는데, '에너지장?'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체 '에너지장'이 무엇인지에 대한 아무 설명도 없다.

"얘가 속고만 살았나? 내 말 잘 들어. 일단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책을 애인보다 더 가까이 끼고 살아야 돼. 아예 밥이나 물이라 생각해!"
"일단 내공이 쌓이면 그 주변에 '에너지장'이 형성되어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막 끌리게 되어 있거든!"
"shut up!(닥쳐!) 그건 공부 축에 끼지도 못해. 평생을 시험, 시험 하며 온갖 잔머리를 다 굴리다 공부가 뭔지, 인생이 뭔지 짐작조차 못한 책 강시처럼 살아가는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지. 그런 사이비 공부는 정말이지 공부의 도를 모독하는 쑤레기야! 쑤레기!"
"모든 사람들에게 따돌림당하면서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뭣하는가. 그런 사람에겐 우울증 아니면 자폐증밖엔 길이 없다.

  사실, 우연한 기회에 추천을 받아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물론 동의하는 부분도 많았다. 경쟁이 극해 달해 공부 같지도 않은 공부가 넘쳐 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비판하며, 진정한 공부란 끊임 없는 질문과 이 세계에 대한 호기심, 인생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이어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는 "지적 공동체" 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하신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지점이었다. 공부의 '본래 의미' 가 훼손되고, 대학은 취업 중개소로 전락했으며, 사람들은 '소비적이고' '쾌락적인'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기에 바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주와 인생에 대한 인문학적, 철학적 탐구"를 위해 고전을 낭송하고, 발제를 하고, 공동체를 만들고, 서로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공부인가?또, 모든 사람의 인생이 목적이 모름지기 공부를 통해 지적 성숙을 이루거나, '덕'을 쌓는 것이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행복한 세상이 올까? 의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 부분이다.
  연애를 잘 못해서 고민이라는 제자에게 '책 100권만 마음먹고 읽어봐! 연애 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일걸? 니가 책을 읽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 연애도 제대로 하는 거란다!" 라고 말하는데 솔직히 많이 당황스러웠다. 책 100권?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책이 최고고, 공부가 최고라는 것이다. 공부가 만병통치약이라는 것인데, 돈이 없어서 괴로운 사람에게는 빈곤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추천해줘야 하고, 외로운 사람에게는 애인,친구,가족이 생길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먼저 아닌가? 왜 그들에게 인문학 공부를 왜 추천하는지 그 근거에 대해서 수긍할 수가 없다.    
  결국 삶이란 변하기 위한 것이고, 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알아야 하며, 새로운 것을 알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글귀는 인상 깊었다. 또,

...
  고전을 지었던 당대의 수많은 학자들이 '공부의 달인' 이었던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러나, 공부가 세상 무엇보다 달콤하다고 말했던 그 '공부의 달인'들과 함께 당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이 없었다면 그들이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런 민중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에서 다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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