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신앙은 한국의 민간신앙의 하위분류에 속한다. 민간종교라고 하지 않고 민간신앙이라고 하는 이유는 종교라고 부를 만큼 체계화 되어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연히 하나의 믿음체계로써 민간에 계승되어 오고 있기 때문에 민속학에서는 민간신앙이라는 연구주제를 통해 인간의 삶을 연구해오고 있다.
마을신앙은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여 마을신에게 제재초복, 즉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복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주민들의 제사라고 정의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을신앙이 근대로 오면서 미신으로 불리며 타파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있다. 물론 그것은 현재에도 일부 마찬가지이지만, 80년대 이후 자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일어나면서 마을신앙을 타파가 아닌 보존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마을신앙을 정태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점이다. 즉, 동제, 산신제, 당산제, 장승제 등 현행되고 있는 마을제가 과거부터 그 모습 그대로 전승되어왔다는 시각이다. 이러한 시각은 마을제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것이며, 변하는 시대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적응하지 못했다는 오해를 낳기도 한다.
따라서 마을신앙의 역사성을 통해 각 시대상황별로 마을신앙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 책에는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방대한 양의 자료가 제시되어있다. 그러나 여기서 몇가지 사례만을 들자면, 성황신은 고려초기에 중국의 예법에 맞게 국가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중국을 통해 유입되었다. 중국의 성황은 성을 지키는 신인데, 민간에서 전해져 오다가 후에는 지방관과 상위지배층의 제사대상이 되기도 했다. 11세기 중반에 국가에서 성황을 제사지내고 12세기 이후에 지방에 성황사가 세워지기 시작했는데, 이 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지방관이었지 민중들이 아니었다. 이후에 이러한 제사를 접한 민중들에게 성황신이 지방관이 제사지낼만큼 강력한 신격으로 인식되면서 민간에 성황신앙이 확산된 것이다.
한편, 현재 장승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떠올리는 사람얼굴을 한 모습의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 또한 역사의 어느시점에 등장한 것이다. 조선시대 이정표 역할을 하던 '후'가 마을 변두리에 세워지게 되었는데, 간단히 나무판자에 거리와 마을의 이름을 적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계적, 지표적 의미의 후에 방어적, 수호신적 의미가 부여된 것은 조선 후기이다.
또한 나말여초의 호족들이 자신의 조상을 신격화하여 주민들의 제사대상으로 삼은 예 등을 봤을 때, 현재 마을제사에서 받들여지고 있는 신들이 자생적으로 발생했다고 보는 시각도 재고 되어야한다. 권력가들이 자신의 집안의 신성성을 주장하고, 이를 통해 주민들을 결속시키려는 정치적 목적이 마을신앙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이 결론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마을신앙을 좀 더 총체적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마을신앙이 형성될 당시의 사회,경제,정치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에 민족정체성과 관련하여 문화재로 지정되고 있는 마을신앙을 대할 때도 정태적 접근이 아닌, 총체적 접근을 통해야 할 것이다. 즉 단지 오랫동안 예전부터 전해온 서낭제, 장승제라고만 이해하여, 그러한 마을 신앙이 예전 모습 그대로 전승되어있다는 환상을 버려야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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