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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문화인류학

(독후감) [염리동 소금마을 이야기] (무지개반사, 이매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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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026730 

 

염리동 소금마을 이야기

10대들이 길어 올린, 사라질 마을 이야기[희망제작소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총서] 제15권 『염리동 소금마을 이야기』. 마포 종점과 소금 창고가 먼저 사라지고, 마포 종점과 소금 창고가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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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밖 청소년들이 마포구에 있는 염리동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수집하고 기록한 책이다. 일단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용어가 거슬린다.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용어란, 일단 청소년은 학교에 있는 것이 정상이고 학교 밖에 있는 청소년은 정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프레임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것 아닐까? 우리는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에게 "학교 안 청소년" 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런 청소년은 그냥 "청소년" 이라고 부른다. 아마 이 책을 쓴 사람은 그들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 밖" 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추가로 설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냥 청소년이지. 무슨 "학교 밖 청소년"인가.
  
  수식어라는 폭력.

  아무튼, 염리동은 조선시대에 소금창고가 있던 곳으로써 염전도 있었다고 한다. 바닷가도 아닌데 염전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이 책에서는 그냥 넘어갔다. 아마도 마포나루에서 소금을 거래하는 시장이 발달했었나보다. 물론 지금은 소금시장이 따로 있지는 않고, 지명과 전설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책의 내용은 매우 빈약하다. 그냥 작가들이 <오늘은 누구를 만나러 갈려고 했는데, 그 분을 인터뷰하지 못해서 그냥 돌아왔다. 하지만 즐거웠다.> 라는 내용이 등장하기도 한다. 염리동의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를 한다고 하지만, 노인계층 몇 명, 아동들 4~5명과 이야기를 하고 끝난다. 이게 대체 뭔가. 또 작가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얼마나 많은지, <오늘 조사를 가려고 했는데 누가 약속시간에 늦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라는 일기 같은 내용도 등장한다. 염리동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염리동을 조사하는 작가들의 '조사기록' 을 쓰려고 한 것인지 헷갈린다. 한 쪽에 아예 집중하던지, 아니면 책을 훨씬 두껍게 쓰던지 하는게 좋았을 것 같다.
  또, "온정이 녹아있던 마을이 사라져가고 있다. 안타깝다. 그러니까 기록해두자." 라는 생각이 나는 불편하다. 안타깝다? 누가 누구에게 안타깝다고 말하는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염리동에서 단 1~2년이라도 살아보았을까? 염리동 주민들과 살을 부대끼며 마을 일에 참여한 적이 얼마나 있을까? 만일 그런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면 그것은 꽤나 기만적이다. 사라질 위기가 닥치지 않았던 시기에는 염리동에 아무 관심도 없다가, 겉에서만 보고 "어, 사라져가고 있네! 이런 안타까운.. 기록을 해둬야지!"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과연 떳떳한 일일까.. 이 이야기는 뒤에서도 하겠지만.. 아무튼 내 생각은 그렇다.
  이 책이 왜 쓰였는지, 어떤 청소년 기관이 자신들의 실적을 위해 청소년들을 어떻게 설득했는지, 아니면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동기로 쓰였는지 이 책에서는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책을 별로 안 좋아한다. 책 뒤에 숨어서 솔직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라, 그것은 독자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이 직접 마을을 돌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는 것의 가치는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이 기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염리동에 수십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가 읽을 수 있었겠는가?비록 거친 기록이지만,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왜 그것을 기록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는 <재개발로 인해 곧 사라질 이야기이기 때문에> 라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그것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게 되면서 가치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욕적으로 들린다. 당신은 누가 당신에게 "사라져 가고 있군요." 라고 말하면 기분이 좋은가? 과연 누가 누구의 가치를 마음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책 쓰는 작가는 마음대로 그럴 수 있을까? 녹음기 들고 다니는 사람은 그럴 자격이 있을까? 없다고 생각한다.>
  재개발 되기 전에는 기록할 생각도 하지 않았으면서, 재개발 된다고 하니까 "헉! 안돼! 이것은 가치가 있는 이야기야!" 라며 달려드는 것이 떳떳한가? 기록하던 말던 그것은 자유이지만, 이런 반성은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그렇게 동네 이야기를 기록하려는 자기 자신의 욕구에 대해서도 성찰해야 한다. 왜 그런 것을 기록하려고 하는가? 온전히 지역사회나 마을을 위하여? 내 경험상, 본인의 욕구에 솔직하지 못하면 금방 나가 떨어진다. 다른 사람과 약속을 잡고, 찾아가고,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돌아와 그것을 정리한다는 것은 체력적으로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긴 했지만, 의미 있는 책이다. 나는 이런 작업을 하며 살고 싶다.
 
  사라져 가니까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서 단물만 빨아먹고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변해가는 과정을 찬찬히, 오래 관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관찰하는 그들에 대한 예의다. 말 함부로 해서는 안되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직접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마음대로 지껄인다면?
  안 하는 게 낫다. 무조건 해야겠다면, 누구나 비판할 수 있게 다 드러내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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