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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문학

(독후감) <루쉰단편선집-아Q정전/광인일기> 루쉰, 문예출판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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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책을 읽고 나서 느끼는 것이지만,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정리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책을 읽은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루쉰의 소설선집을 빌려 읽고 난 뒤 내가 느낀 것을 적어본다.

 

 루쉰의 소설 중에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광인일기이다. 이 짧은 소설을 읽고, 나는 당시 루쉰이 어떤 고뇌를 했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글에 등장하는 '광인'은 소설의 서술자가 아는 한 형제 중 동생인데, 동네에서 미친 사람으로 통한다. 

 

"오늘 밤은 달빛이 좋다. 내가 이것을 못 본 지도 이미 삼십여 년이 되었는데, 오늘 보니 기분이 아주 상쾌하다. 지난 삼십여 년이 전부 혼비 상태였음을 이제야 알겠다."

 

 그 광인이 쓴 일기의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달빛을 못 본지 삼십여년이 되었다니, 평생 지하감옥에 살았던 것도 아닐텐데, 거의 매일 밤 하늘에 뜨는 달을 30여년이 지나서야 처음 봤다는 것은 이상하다. 그러나 지난 삼십여 년이 전부 혼비 상태였다는 문장이 내 이해를 도와주었다. 달빛은 광인이 얻은 새로운 인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중국사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될 수도 있겠고, 세계 정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될 수도 있겠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인식이 있기 전에는, 거의 평생이 혼비한, 무지하고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광인에 루쉰이 투영되있음을 생각할 때, 광인일기의 첫 문단은 신지식을 접하고 중국,세계,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루쉰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광인의 일기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일기는 광인이 쓴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담담하게, 때로는 감정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한 글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광인일기에서 드러난 것처럼, 광인을 멀리하는 동네사람들이 오히려 미친사람인 것 같을 때도 있었다. 봉건사회의 한 복판에서, 사회의 단면을 꼬집어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고독이랄까. 그러한 감정이 글을 읽는 나에게 전해졌다.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이 나의 형이다! 나는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의 동생이다! 나 자신은 남에게 잡아먹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의 동생인 것이다!"

 

 광인일기의 곳곳에, 당시 중국의 식인풍습이 드러나고 있다. 광인의 형은 광인에게 "자식을 바꾸어 먹을 수 있다." 라고 했었고, 랑즈춘의 소작인이 와서 사람의 심장과 간을 먹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을 먹는 풍습만큼이나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 사람을 먹는 것이 옳은 일인지 따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저 '예전부터 그랬으니까요..'라고 답할 뿐이다. 루쉰은 이 사실이 답답했던 것 같다. 그런 답답함은 광인이 한 사람을 붙잡고 사람을 왜 잡아먹는지, 그리고 그것이 옳은 일인지 꼬치꼬치 캐묻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또한 위 문장에서 드러나있듯, 루쉰은 아무리 발버둥처도 자신은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의 동생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남들에게 잡아먹힐 위험이 쳐해있으면서도 말이다. 과거의 관습이 아무런 비판없이 계속 이어져가는 사회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음을 루쉰은 종종 느꼈던 것 같다. 

 

"사람을 먹은 적이 없는 아이들이, 혹시 아직 있을까? 아이들을 구하라..."

 

 과거의 관습은 그것이 악습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부모에서 자식으로 이어진다. 애초에 아이들까지 광인을 멀리하는 것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그 사람이 광인이라고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과거의 관습에 때묻지 않은 아이들이 필요하다.이들이 관습에 찌들기 전에 중국사회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도와야 할 필요성을 루쉰은 절실하게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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