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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문학

(독후감)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마광수,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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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돌아가신 마광수 교수님의 에세이집이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그의 생각과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조언, 그리고 문학작품, 특히 시 작품들에 대한 마광수 교수님의 해석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물론 그 당시 사회적 맥락과 현재의 맥락이 달랐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상당히 성차별적인 주장들이 등장하고, 성욕이 인간의 욕구 중 가장 본질적이라고 주장하신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수긍이 가지 않는다. 또한 성적인 욕구에 대해서 상당히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묘사한 부분들도 있어서 조금 놀랐다. 2017년의 내가 이렇게 놀랐는데, 1989년 당시에는 그 파급력이 어땠을 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1.인간의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목적이 성욕의 해소, 즉 육체적 사랑이다.
식욕도 결국 성욕을 해소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기 위한  것이며, 우리가 먹는 소고기, 상추, 사과 등의 식품들도 결국 성욕의 산물이므로 성욕이 식욕보다 본질적인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2. 정신적 사랑이란 본디 허상이다.
체적 성욕이 가장 본질적이며, 사랑하는 이와 키스하고, 팔짱끼고, 포옹하고, 자는 것, 그런 육체적 접촉 자체가 사랑의 참된 원천이라고 한다. 정신적 사랑이나 고차원적 사랑 같은 개념은 정신주의자들이 만들어낸 허구라는 것이다.


3. 욕구에 솔직해야 윤리도 뚜렷하게 세울 수 있다.
물론 직접 언급하시지는 않았지만, 이 책이 이런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욕구를 은폐할수록 마치 풍선효과처럼 다른 곳에서 퇴폐화되고 파멸적으로 변질된다. 드러내놓고 이야기해야 성윤리도 똑바로 세울 수 있다.


4. 성욕에 대한 불만족을 명예욕이나 출세욕으로 채우기 위해 예술활동을 하는 것은 일종의 "오랄 마스터베이션"에 불과하다.

5. 야하다는 말은 천박하다는 말이 아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욕구를 인정하고 표출할 줄 안다는 뜻이다.
'야하다.'의 '야'를 '들판'이라고 본다면 야하다는 것은 마치 들판의 동물들의 모습과도 같은 가장 원초적이고 솔직하며 자유분방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6. 에로티시즘에 대한 가식적 태도를 버려라.
겉모습을 꾸미고, 성적인 매력을 어필하는 것을 천박하고 비도덕적으로 보지말라.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일이다. 앞에서는 에로티시즘을 욕하고, 뒤에서는 몰래 성을 탐닉하고, 변질시키는 것이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이다. 


  내가 받아들인 마광수 교수님의 메시지를 정리해보았다. 음.. 30년전에 쓰여진 책인데도, 내가 가진 신념들이 많이 박살나 버렸다. 또, 전혀 퇴폐적이지 않고, 많은 고민을 들게 하는 에세이들이 많다. 물론 성차별적인 발언들과 성욕을 거의 절대적인 욕망으로 보는 글들은 수긍이 잘 가지는 않는다. 이런 글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솔직히 분석하기 위한 새로운 언어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자기 자신을 알지. 누가 알겠는가?

 아무튼, 마광수 교수님의 정의를 빌리자면,
 나도 야한여자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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