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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자연해설

[2023년 태백 시민 아카데미] 소설가 김영하의 <우리가 소설을 필요로 할 때> 강연 후기 (202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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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일을 정말 단순하게 구분하면, '물건을 만드는 일'과 '이야기를 만드는 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연해설은 주로 후자에 속하는 일이다. 이야기의 기능과 가치에 대해 고민하며 이 강연을 들었다.
 

1. 인간의 특성 중 하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해왔고, 지금도 이야기를 좋아한다. '드라마'라는 단어 자체가 고대 그리스어인데, 그 옛날 옛적 고대 그리스 사람들도 저녁이 되면 극장으로 가서 드라마를 보았다. 이야기 잘 하는 사람은 인기가 많은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고대 사회에서도 이야기꾼, 작가, 감독이 하나의 직업이었다.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민족은 아직 지구상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양가죽은 지금도 비싼데, 옛날에 살던 사람들은 그렇게 소중한 양가죽에 이야기를 써서 남기려고 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양피지로 만든 성경이다. 중세시대에 양피지로 만든 성경을 주문하면 10년 정도가 걸렸고, 비용은 저택 한 채의 가격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성경 속에 담긴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 재산을 털었다.

 

2. '이야기'를 좋아하는 인간 집단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왜 그럴까? 이야기를 좋아하는 인간 집단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어보면, 나약한 인간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능력 덕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야기라는 형식이 사용되었다. 직접 만나는 관계로만 조직을 만들면 30명~50명이 조직의 한계이다. 그 이상으로 조직을 거대하게 만들려면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야기를 통해 뭉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국가도 만들고, 종교도 만들고, 군대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집단 안에는 강한 유대감과 신뢰감이 형성되었다. 인간은 나와 같은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강하게 연대하는 특징이 있다. 집단 구성원들이 가진 지능을 합쳐, 인류는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집에 가서 넷플릭스,티빙,쿠팡플레이,유튜브 등등.. 수많은 플랫폼을 통해 이야기를 소비하고 있다.

3. 이야기의 기능은 무엇인가?

 

 이야기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크게 이야기의 기능에 대해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야기라는 방식은 지식,의미 등의 정보가 매우 오래 기억에 남도록 해준다. 정보를 그대로 전달하면 금방 사라지거나, 더 나아가 듣기 싫어진다. 그러나 이야기는 감정을 함께 건드리므로 기억에 오래 남게 된다. 

 둘째, 이야기는 한 사람의 가치관과 마음을 무의식적으로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옛날 이야기를 들어보면, 들을 때마다 새로운 교훈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교훈을 담고 있다. 이야기는 권선징악, 지혜로움, 우정과 사랑, 근검절약 등.. 살면서 꼭 습득해야할 가치들을 전달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다.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셋째, 이야기는 공감능력을 키워준다. 넷째, '이야기 속의 일이 나한테 생긴다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미리 대비하게 만들어준다. 다섯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카타르시스란  다른 사람의 문제를 내 문제인듯 경험함으로써 나의 감정이 해소될 때 느끼는 후련함과 통쾌함을 의미한다. 여섯번째,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고, 그를 통해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작가들은 생각과 감정을 용기있게 표현해내는 전문가들이다.

 

4. 재밌는 이야기의 조건은 무엇인가?

 

 재밌는 이야기에는 트러블, 즉, 문제가 있다. "내 조카는 신동이어서 서울대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어." 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냥 흘려 듣는다. 그러나, "내 조카는 신동이어서 서울대를 졸업해서 변호사가 되었어. 그런데 어느 날 사기를 당해서 미쳐버렸어." 라고 하면 그때부터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재밌는 이야기는 독자들의 불안감을 건드려준다. 아이들이 왜 고아가 나오는 동화를 좋아하는가?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불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인공인 고아가 열심히 노력하여 성공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이야기를 들으면 안심이 된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이다. 
 한 명의 인간이 태어나 아기가 되고, 학생이 되고, 청년이 되고, 중년이나 노인이 되면 그에 맞는 불안감이 생긴다. 그리고 특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그 시대와 관련된 불안감을 느낀다. 그러한 불안감을 잘 다뤄주는 이야기가 결국 인기 있는 이야기, 재밌는 이야기가 된다.

 

5.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기록하고, 나눌 것인가?

 

 한국 사람들이 왜 동남아, 흑인, 무슬림들에게 공감하지 못하는가? 미국 백인이 주인공인 영화와 드라마는 너무나 많이 봐왔지만, 그 외에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린이, 동물에 대한 공감이 크게 확대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에는 '니모를 찾아서', '하얀 마음 백구', '슈렉', '프리 윌리' 등.. 동물과 어린이가 주인공인 수많은 이야기들이 중요한 역할 수행했다.
 이야기는 인간의 감정을 건드린다. 감정이 건드려지면 공감의 대상이 넓어진다. 더 많은 대상들에게 공감하게 되면, 똑같은 문제를 두고 그 이전과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점차 사회가 변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이야기의 힘을 잘 활용해야 한다.

 

6. 이야기, 특히 재밌는 소설을 읽는 것은 내 삶에 도움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때 스스로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가만히 있으면 끊임없이 내 인생과 관련된 문제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귀 기울일 때는 내 안의 불안의 목소리가 잠잠해지곤 한다. 소설은 가상의 주인공에게 귀를 기울림으로써 자신의 문제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준다.
 현대인들은 늘어나는 여가시간을 좀 더 즐겁게 보내기 위해, 점점 더 흥미롭고 감동적이며 의미있는 이야기들을 원하고 있다. 즉, 재미있는 이야기가 곧 재산인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일단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접해야 한다.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시간 낭비인가? 소설을 읽는 것이 시간 낭비인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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