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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연을 찾아서

20대 한국남자 3명의 북한산 등산 후기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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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에 갔다.
 그냥 왠지 한 번 올라가 보고 싶었다. 왠지 뭔가 주말에 가볍게 오르기 좋은 산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TV를 보다 보면 연예인들이 주말에 북한산에 올라가는 것이 종종 나오니까 말이다. 왠지 익숙하게 생각했었다. 뭐, 가볍게 올라갈 수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북한산성에는 몇 개의 문이 있는데, 그 중 하나인 보통문이라고 써져 있었다.

 

 등산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올라갔는데, 역시 등산로 입구에서는 신나는 트로트(?)와 술집, 등산용품점이 즐비했다. 사람도 바글바글 했다. 우리나라에 있는 산 밖에 가본 적이 없다 보니, 이제는 그런 풍경이 없으면 "한국적인" 등산로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참 웃긴 생각이다. 한국의 산 밖에 가본 적이 없는 내가 "한국적인 산" 이라는 평가를 했다니 말이다. 적어도 외국에 몇 번은 가봐야 비교 대상이 생기고, "한국적" 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가 있을텐데 말이다.

 정체성은 "경계"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하니까. 

산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다. 엄청난 바위산인 북한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아무 말 안 보태고 <미친듯이> 힘들었다. 북한산이라는 단어만 익숙했지, 사실 이렇게 힘든 산인줄은 몰랐다. 운동화를 신고 살살 걸어가려고 했는데 이건 트래킹이 아니라 클라임빙 수준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트래킹과 클라임빙, 마운팅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누가 지나가면서 그러던데, 딱 나에게 했던 말인 것 같았다. 특히 백운대 근처는 솔직히 좀 무서울 정도로 가팔랐다.

  물론 그 사람이 맞는 소리를 한 것인지는 확인해보지 않았다.

아파트 밖에 안 보인다. 참 "한국적"인 풍경인 것 같다.

 산을 이상적인 공간으로 비유하는 글을 읽은 적이 많이 있다. 뭐, 어떤 사람이 산에서 길을 잃었는데, 우연히 낙원과도 같은 세상을 발견했다던지.. 그런 이야기 말이다. 현실과는 대비되는 이상적인 공간으로 '산' 이라는 공간을 설정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음.. 이상향이라, 현실에 찌들어 있다가 가끔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몰라도, 산에 사는 다람쥐, 멧돼지 같은 동물들에게는 산 만큼 현실적인 공간이 있을까 싶다.
 "이상" 이라고 하니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서, 내려가면서 이것 저것 고민을 해보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할 때, 몇 가지를 반드시 확인하려고 하는 것 같다. 첫번째는 <그 사람이 "이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을 가지고 있는가?> 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왜 그러한 이상을 가지고 있는가?> 이다. 개인적인 이유가 다양하게 있겠지만, 단순히 이상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나 존경을 받고 싶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만약 이상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그 이상에 도달하고자 하는가?> 예컨데 머릿 속으로 상상했던 바에 현실을 끼워맞추려고만 하는 방법도 있고, 현실에서 실제로 구체적인 노력을 해나가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현실에서 실제로 구체적인 노력을 하려면, 일단 현실의 부족한 점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이것을 그냥 상상으로 커버해버리기 쉽다고 생각한다. 
 
 정원 꾸미기에 비유하자면, "예쁜 정원"을 꾸미는 것이 자신의 이상인데도 힘든 삽질은 하고 싶지 않고, 비료 냄새도 맡기 싫어서, 그냥 여러가지 변명만 늘어놓고 현실을 회피하려고 하는 모습을 나 자신에게서 발견할 때

 개인적으로 그럴 때는, "참 추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800m 가 넘는 고산지대에 사는 고양이들이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에 완전히 적응하여 갖은 애교를 부리고 있다.

 

 아, 고양이도 뭔가 "이상향"과 관련된 동물인 것 같다. 고양이가 뭔가 신비한 느낌이 있지 않은가? 현실과 현실 너머의 다른 세계를 연결해줄 것 같은 신비함이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고양이를 정상 부근에서 만났다. 바위틈에서 등산객들의 간식을 얻어먹으며 적응해버린 친구들이었다.
 이상향.. 나의 이상향이라고 한다면, 1. 모든 사람들과 트러블 없이 정답게, 상냥하게 지내고, 2. 세상을 바라보는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3. 나의 경제적, 심리적 독립성을 유지하며 살다 죽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참 웃기다. 모든 사람들과 트러블 없이 정답게 지내고 싶다? 그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다. 두번째, 세상을 바라보는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 적어도 주어진 상황 속에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려는 시도도 잘 하지 않고, 외국 여행을 한 번 재밌게 다녀와 보려는 것도 포기했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너무 공상적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의 경제적, 심리적인 독립성. 용돈 열심히 타 쓰고 있고,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는 너무 먼 이야기이다. 독립성이라는 것도 환상인 것 같은게, 내가 디자인한 공책을 몇 권 팔아서 밥을 사 먹었다고 하면, 그것은 내가 독립적으로, 내 능력으로 이룩한 것인가? ... 공책 사준 사람들 덕분에 그게 가능한 것이다.

 "밥 내가 살께!" 같은 말은 참 표현력이 부족한 말이다.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나에게 용돈을 주신 부모님이 사주시는 것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이다.

 그냥 그런 현실적인 문제에 "초탈한 척" 하고 싶고, "나는 그렇게 바닥만 보면서 살지 않고 먼 지향점을 바라보며 걷고 있다." , "그러니까 난 너희들과 달라." "그러니까 날 좀 존경하라구." 같은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인 어리석은 상태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산에서는 바닥을 안 보면서 걸으면 발목이 삐어버리기 십상이다.

 

경치는 정말 좋았다.

 누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고 하던데, 딱히 맞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뭐, 산에 오면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기는 하는 것 같다. 산에 오면 몸을 움직이느라 잡생각이 안 들고, 정상의 짜릿한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고통도 인내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등산이 끝난 뒤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그런 건강한 마음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는 그냥 끊임 없이 직업을 갖기 위해서 경쟁하고, 갑질도 당하고, 또 내가 남에게 상처주기도 하고.. 그런 일상이 반복될 뿐이다. 그것은 내 수준에서는 그냥 "힘들다.." 정도로 인정하고 넘어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다음 번에는 관악산을 가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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