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니고, 저번주 일요일에 관악산에 다녀왔다. 성적이 나올 때까지는 정말 신나게 놀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렇게 재밌게 놀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 우울해졌다. 가끔 무엇을 먹어도 아무 맛이 없고, 무엇을 보아도 그냥 전부 회색빛으로 보일 때가 있는데, 나는 방학이 보통 그런 시간들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분이 안좋아도 등산이나 자전거 타기 운동은 계속 하게 되고, 또 살은 계속 찌게 되니까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내 주위에 등산을 좋아하는 친구 2人이 있어주어서, 그들과 함께 등산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관악산에 가기로 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인데다가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포카리스웨트를 가장 큰 걸로 사서 가방에 넣어두었는데, 너무 더워서 일찌감치 다 마셔버렸다. 최근에 비도 오지 않아서 옹달샘도 다 말라붙어 있었다. 물을 더 사왔어야 했는데.. 라는 후회가 들기 시작하였다.
후회라, 사람들은 모두 종종 후회를 한다. '후회'라고 하니까 갑자기 강산에의 노래가사가 떠오르는데.. 어떤 과거의 일이 있을 때, <후회를 하고 있다면 가위로 오려낸 듯이 잊어버리고, 후회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웃으며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소중하게 간직하라>는 가사 말이다. 멋진 말인데, 물론 말은 참 쉽지만 실제로는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 나의 능력이 충분하지 못해서 실패했던 일을 후회하는 것은 참 소모적인 일인 것 같다. 만약 시간을 돌린다고 해도 어차피 똑같은 실패가 반복되었을 것이다. 능력이 부족해서 생긴 실패는 '실수'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필연적인 '실패'일 것이기 때문이다.
관악산 등산이 오랜만이어서,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물어 올라갔다. 사람들이 참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었다. 산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렇게 사람들이 서로 물어보고, 또 알려주며 살아간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물론 나는 길거리에서 누가 나에게 말을 물어오면 갑자기 빨리걷기 선수가 되곤 한다. 아무튼, 꼭 어려운 질문이 아니더라도 그냥 일상적인 일들을 서로 묻고 답하면서 지내면 참 즐거울 것이다. 예컨데 "밥은 먹었니? 뭘 먹었니? 어제 뭐했니? 그거 봤니? 옷 새로 샀네?" 같은 일상적인 주제들 말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가장 못하는 것 중 하나가 그런 '일상'적인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참 고민이다. 남들은 내가 보기에 아주 사소해 보이는 주제를 가지고 재잘재잘 오손도손 재밌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던데, 나는 그런 주제들을 가지고 대화를 지속하는 것이 참 어렵다. 아, 대화주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나 : 밥은 드셨어요?
상대방 : 네. 오늘 종로에 있는 식당에 갔는데 괜찮더라구요.
나 : 아하. 그러시군요.
상대방 : 제이제이씨는요?
나 : (하.. 이 주제에 대한 흥미가 완전히 사라졌는데, 일단 뭐라도 말을 하자.) 네, 저는 굶었습니다.
상대방 : 어, 왜요?
나 : 그냥 굶었습니다. 저..
상대방 : 네.
나 : 이 주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흥미가 떨어져서 더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네요. 재밌는 주제가 없을까요?
상대방 : 네?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보세요?
그러나, 가끔 "특이한" 주제에 대해서는 참 오래도록 잘 떠드는데, 나에게는 그것들이 '일상적'인 주제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에게는 그것들이 전혀 특이하지 않은 일상적인 주제들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렇다고 해서 그런 '특이한' 주제들에 대해서만 계속 이야기를 하다보면 너무나 지루해서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참, 가끔 스스로도 대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오렌지를 한 조각 먹었다.
그 맛이 참 시큼털털하면서도 달콤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열심히 올라가다보니 험준한 관악산의 정상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나무들에 가려서 과연 정상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높이 올라갈수록 나무 틈으로 정산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역시 계속 계속 하다보면 안되는 일이 없구나.. 라며 인생의 다른 영역에 관해서도 희망찬 믿음을 가지고 싶어진다.
오늘도 정상에서 고양이를 만났는데, 고양이에 관해서는 흥미가 없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도록 한다.
정상에 다다르니 경치가 참 아름다웠다. 예전에 누가 "꿈이 뭔가요?" 라고 물었을 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더니 진심이냐는 진지한 질문을 받았던 적이 있다. 사실, 반만 진심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나도 아직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과는 별개로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나는 돈이 좀 여유가 있을 때 세상이 좀 아름다워 보인다. 친구들과 웃긴 이야기를 할 때 세상이 좀 아름다워 보인다. 걱정했던 일이 잘 풀렸을 때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 보인다. 만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너무 어렵다면, 그냥 내가 끼고 있는 렌즈를 '행복렌즈'로 바꿔버리면 참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렌즈를 갈아 낀 것이지, 실제적으로 이 세상이 진보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가 아닐까.
사실, 관악산의 '관'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하다가, "혹시 사람이 죽었을 때 들어가는 그 관인가?" 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혹시 그만 살고 싶은 것인가? 라는 생각도 스쳐갔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관이 아니라, 머리에 쓰는 '갓'을 의미한다고 한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나도 머리에 갓 한번 써보겠다고 참 아둥바둥 살고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양반이 되겠다는 것은 아니고, 출세하고 싶다는 욕망을 그렇게 비유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좋은 비유는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그럼 출세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란 말인가? 그러나 내 생각에, "목적"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조심해야 한다. 목적이라는 단어 자체가 오염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단어를 받아들이는 나의 사고방식이 오염되어있기 때문이다. 나는 삶에 "목적"이 있다는 것을 전제할 경우, 동시에 참 많은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삶에 목적이 있다니.. 목적에 안맞는 것을 밀어내고 그 목적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는데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삶에 '목적'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목적이 있어야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이고, 목적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지 않으면 그 삶은 쓸 모 없는 것인가? 그건 좀 아니지 않나. 물론 목적이 있으면 좋은 점도 많겠지만, 목적이 있든 없든 어차피 의지 없이 태어나서 언젠가 무조건 죽는 것 아닌가. 나도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냥 일단 태어났고, 태어나 보니 나는 죽기를 두려워하는 본능을 타고 났으며, 불교에서 말하듯이 여러가지 다른 욕구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번뇌와 고통 속에 허우적 거릴 수 밖에 없는 것, 그냥 그것이 전부가 아닐까? 누군가가 말했듯이, 아직 살아있는 동안에는 죽음이 다가온 것이 아니고, 막상 죽음이 정말 다가왔을 때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말인 즉슨, 죽음이 다가오지 않는 한 수많은 번뇌와 고통을 겪으며 허우적 거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닌 것 같지만 일단 넘어가자.)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나 스스로를 좀 더 좋아할 수 있는 삶을 지향하며 그냥 살기로 했다. 남들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무언가, 나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열심히' 끈질기게 해나갈 때 나는 나를 좀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 그 정도면 괜찮은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에 부럽고 질투나는 일은 넘쳐날 것이고, 또 가끔 자괴감을 가질 수도 있고, 화가 끝까지 차올라서 다 뜯어버리고 태워버리고 싶은 순간도 무척 많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인생을 좋아할 수 있다면 그걸로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다.
라고 생각하니 내가 조금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렌지를 하나 더 먹었다.
참 즐거운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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