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에 올라갔다.
노원구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무수한 아파트들이 만드는 무늬를 보니까, 마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반도체 부품 같은 것을 보는 것 같았다.
서울이 하나의 반도체라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불암산은 바위산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불암산의 바위 하나 하나가 모두 예술이었다. 나는 저 둥근 바위들과 하루를 함께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위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나는 바위들에게 모두 이름을 붙여 줄 것이다. 내가 이름 붙인 둥그런 바위들과 하루 종일 낮잠을 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곳곳에 사람들이 불암산을 꾸미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이 보였다. 불암산의 전설도 조사해서 팻말로 만들어 놓고, 이 높은 곳에 정자까지 지어두었다. 그러나 등산로 중 일부는 잘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아서 길을 잃어버리기 쉬워보였다.
언젠가 의자에 사자성어나 고사성어를 쓰는 것이 유행이었나 보다. 우마상희라는 사자성어가 눈에 들어왔다. 힘들게 일한 소와 말이 서로를 위로하며 논다는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꼭 "힘들게" 일을 해야 즐겁게 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 나는 적당한 노동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적당해야 하는데.. 무엇이 적당한 지는 솔직히 사람마다 다르다. 일을 하지 않고 집에서 평생 돈만 쓰고 살 수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나는 그런 선택을 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되었을 때 정말 행복해질지..는 의문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친구들,가족,이웃,애인 등이 있어야 하고, 나의 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돈이 많다고 그 두 가지가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긴 하겠지만,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소비적인 삶보다 노동하는 삶이 훨씬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에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별개의 이야기를 뭉뚱그려서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므로,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너무 많이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도 너무 쉽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 이제 내 또래 중에는 결혼을 하는 친구들도 있고, 벌써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그게 대체 나와 무슨 상관인가. 전혀 없다. 혹, 내가 도전하고 노력하는 것에 대해서 남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엄밀히 따져보면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사람들이 저마다 떠드는 것일 뿐인 것이다.
내가 가려고 하는 길이 어떤 길인지만 알고 있으면, 조금 뒤처지더라도 상관 없다. 아니, 뒤처진다는 말 자체를 잊어버려도 상관 없다. 아무리 비교하고 부러워해도 인간을 결국 다 죽고 잊혀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 좋다.
불암산도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엄청나게 가파른 구간이 많아서 놀랐다. 대학교 신입생 때 선배들과 등산을 왔던 것이 벌써 오래된 이야기니까, 어떤 산이었는지 까먹을 때도 된 것이다.
잊어버린다는 것 그리고 잊혀진다는 것
예전에는 그것이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것만큼 다행인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등산을 함께 갈 수 있다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 사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의미 없는 집착을 걷어내려고 하다보면, 삶에서 소중한 것들이 그제서야 절절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물론 모두 걷어낼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물론 등산을 좋아한다. 그러나 등산을 자주 할 수 있는 것은 등산을 위해 돈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솔직히 돈이 많으면, 돈이 많았을 때 할 수 있는 다른 비싼 취미생활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좋은 친구를 사귀려면 돈을 많이 벌어서 비싼 취미생활을 해야하고, 내가 "고급스러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참 이상한 생각인 것 같다. 솔직히 말하여, 그런 생각만큼 역겨운 것은 없는 것 같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정말 큰 복인 것 같다. 좋은 사람들과 있다보면 나의 마음도 좋은 생각들로 물들기 때문이다.
나는 더 물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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