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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사회학

(독후감)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교양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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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정도 집중하면 다 읽을 수 있는 책인데, 3일이나 걸렸다.
요즘 집중력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

이 책을 읽고 내가 느낀 점은..
언뜻 보기에는 당연한 것들에 당연하지 않은 이유를 찾아내고 분석하는 것
그것이 페미니즘(여성주의)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담론은 정치적이고, 모든 말하기는 타협적, 설득적 말하기라는 말이 있듯이,
이 책에서 나오는 말을 무조건 진리로 받아들여서도 안된다.

솔직히 나는 '여성주의' 라는 용어 자체에 불편함을 느낀다.
'젠더주의' 라고 하면 되지. 왜 '여성주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젠더' 를 본격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한 것이 여성들이기 때문에
여성주의라는 이름을 붙인 것 같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 인정하고 있듯이,
모든 개인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즉, 이 사회에 개인을 구별하는 사회적 기준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에
단순히 모든 여성은 같다거나 모든 남성을 같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남성들의 젠더차별적인 관념과 여성을 억압하는 권력구조가 문제라고 말한다면,
남성들을 타자화하고 남성들 간의 무수한 차이의 '축'들을 무시하게 된다.

"남성은 여성을 개별화 하지 않고 여성이라는 범주로 환원하여 손 쉽게 다루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서,
"여성을 개별화 하지 않는 남성"들에 대해서 일반화하고 있다.
여성도 다 같은 여성이 아니듯, 남성도 다 같은 남성이 아니지만,
이 책은 그런 문제에 대해서 깊게 다루지 않는다.

이 책에서 인정하듯이, 현대에도 가부장제가 유지되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
가족과 같은 조직에서 권력을 휘두룰 수 있는 가부장,
즉 남성 가장 혹은 남성 지도자들은 남성의 몇 퍼센트나 될까?
가부장이 아닌 남성들이 겪는 차별과 그들이 겪는 구조적 폭력을
단순히 남성들 간의 경쟁에서 패배한 남성들이 겪는 문제일 뿐이라고 말해도 되는가?

가부장제를 만든 것이 남성이라면,
가부장제로 인해 피해를 보는 남성들은 뭐라고 말해야 할까?
자기가 판 함정에 빠져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모순덩어리들이라는 것인가?


성매매 특별법 제정 당시, 거리로 쏟아져 나와 성매매를 인정하라고 말하던 여성들과
여성주의 진영간의 갈등과 혼란을 이 책은 기록하고 있다.
여성주의가 모든 여성을 대표할 수 있는가? 모든 여성을 대표로 남성을 비판하고 사회구조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그런 자격은 대체 누가 쥐어주는 것인가?

이 책도 뚜렷한 해답은 내리지 않는다.

베트남전에 파병된 남성들이 갖고 있는 '애국심'이란
단순히 피지배 계층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군대에 가서 세뇌당한 남성들의 착각일 뿐인가?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
그들이 스스로 어떻게 경험을 해석했는지에 대해
그들이 자신들 스스로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 지에 대해서
이 책은 '듣지' 않는다.
'남성'은 저자의 젠더 인식론에서 철저하게 분석대상일 뿐이다.

여성은 보호대상이기 때문에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이 맞다는 말은
여성들을 보호대상에 한정짓고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남성들의 목소리이다?
일견 타당한 주장이라고 본다.
그리고 여성들이 징집되어 전선에 참여할 경우 사기가 흐트러질 것을 두려워 하는 것도
남성들의 목소리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가?
여자도 군대가자는 말 자체가 남성들의 목소리이므로
여성들의 병역문제는 더 이상 건드리지 말고 이야기도 꺼내지 말라는 말로 덮어버리면 그만인가?
여성들이 평등하게 병역의무를 지게 되었을 때 어떤 변화가 생길 수 있는지,
한국사회의 특성과의 분석과 함께 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다.
이 책은 '젠더'를 단순한 이슈가 아니라 하나의 인식론으로 제시하고 있다.
젠더가 이슈가 아닌 인식론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특정한 사회현상들을 묶어 젠더 이슈로 엮는 것이 아니라,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틀로써 젠더관점을 수용하는 것이 바로 인식론으로써의 젠더이다.

젠더란 단순히 사회현상의 결과물이 아니라,
사회를 움직이고 지탱하는 핵심적인 기능을 한다.
언뜻 보기에는 젠더 중립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제도, 법, 규칙, 질서 등도
자세히 따져보면 젠더를 둘러싼 권력관계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셀 수 없이 많다.
계급, 계층, 인종, 민족, 국가, 소득, 연령, 종교, 언어, 문화권, 학벌, 지역, 젠더...
개인을 구별하고, 종종 차별하기도 하는 기준들이 개인을 사회적으로 규정하고
그러한 규정에 맞는 삶을 살도록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물론 어느 사회라고 그렇지 않겠냐만은.

언뜻 보기에는 당연한 것들에 당연하지 않은 이유를 찾아내고 분석하는 것
그것이 페미니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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