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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사회학

(독후감) <혼자 못 사는 것도 재주> 우치다 타츠루, 북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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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치다 타츠루라는 작가가 쓴 책이다. 고베여학원대학교의 교수이며 1950년에 태어나신 분이다. 서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회비평 에세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물론 일본 사회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일본사회의 원자화, 노령화-저출산-고실업, 비혼족, 자살, 메스컴, 지도자들의 무능 등 다양한 사회현상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다. 한국의 사회구조가 일본과 많이 닮아 있다고 하고, 위에서 열거한 부분들이 사실상 한국에서도 많은 이슈가 되고 있기 때문에 관심이 갔다. 
  우선, 그가 현대 일본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꽤나 부정적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것은 위대한 성취이지만, 그로 인해 사회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구직활동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만큼이 되었고, 이로 인해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히키코모리(?)로 살아가다가 사회적 안전망 없이 고독사하게 되는 사회가 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가 끊임 없이 확장되면서 소비단위가 개인단위로 축소되어 사람들이 원자화되고 있으며, 공동체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 채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예컨데, 만일 4인 가구에 TV가 한 대만 있으면 된다고 광고하는 것 보다는, 4인이 각자 독립하여 TV 4대를 각각 사용하는 모습을 광고하는 것이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득이다. 그것이 독립된 삶이고 멋진 인생이라는 인식을 심는 것이 자본주의의 전략이고, 일본인들은 그러한 전략에 세뇌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공부가 부족해서 그렇겠지만, 내가 이 책에서 조금 신선한 충격을 받은 부분이 2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일에 관한 작가의 생각, 두번째는 자립과 공동체에 관한 생각이다. 
   첫번째는 일에 관한 생각인데, 작가는 취직할 동기와 일할 동기를 구분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 청년들의 이직률이 높은 이유는 취직할 동기는 충분한데 비하여 일할 동기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청년들이 소비사회에서 직업도 자아실현의 일부가 되면서 '나다움'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써 직업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이름 밑에 들어갈 직장의 이름을 획득하기 위한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동기, 즉 취직할 동기는 과열되고 있다. 그러나 취업의 문턱을 넘는 순간, 즉 직장이라는 간판을 단 순간부터는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고 한다. 어떤 직장인가에 대해서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성과는 노동자에게 그대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며, 분배의 과정 또한 불투명하다. 또한 근본적으로 취직은 개인적인 경쟁인데 반해, 노동은 집단과제, 즉 Team-Work인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프리랜서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나 사실상 취직 전의 사회경험이라고는 개인간의 경쟁 밖에 없었던 일본의 청년들에게 노동현장에서 집단적으로 과제를 수행하는 것은 매우 적응하기 힘든 일이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나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군대에서의 경험을 빼고는 팀워크..의 경험이 바로 잘 떠오르지 않는다. 대부분은 내가 경쟁에서 남을 이겨야 보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경험들이다. 또, 취직하고자 하는 동기는 충분하지만 노동? 노동만큼 힘들고 하기 싫은 것은 없다고 나는 현재 믿고 있는 사람이다. 취직은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인데, 꽤나 모순적인 상황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청년들에게 노동의 동기에 관해 일찍부터 교육하자고 주장하는데, 한마디로 그가 생각하는 노동의 동기란 "나의 노동으로 인해 즐거움을 얻는 사람이 있고, 타인의 노동으로 인해 나도 즐거워질 수 있다." 는 사실은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는 것을 노동의 동기로 생각하면 그것은 착각일 뿐만 아니라, 그리 건강한 노동의 동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냥 나온 생각은 아니고, 그의 문화인류학적 지식을 통해 도출된 결론인 것 같다.

  두번째는 자립과 공동체에 관한 생각이다. 작가는 교환을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자립과 고립을 구분하고 있다.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 자립과 고립은 다른 것이다. 작가의 전공이 프랑스 현대 사상인데, 그래서인지 이 부분에서는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그가 생각하는 인간의 본질적 속성은 교환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풍족함보다는 부족함에, 개인보다는 집단생활에 적응하며 진화해온 존재이며, 인간이 이룩한 모든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법칙은 바로 교환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내가 못하는 것을 네가 해주면 나도 네가 못하는 것을 도와줄게." 라는 것이 모든 인간문화의 근간인데, 현대문화는 "혼자서 이것도 못하면 바보입니다." 라는 것을 끊임 없이 주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그것이 진정한 자립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작가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자립이 아니라 고립이다. 나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는 독립된 존재가 늘어나면 이득을 보는 것은, 그러한 독립된 삶에 적합한 물건을 대량생산하는 자본이지 개인이 아니다. 라고 작가는 지적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자립이란, "상호축복의 네트워크, 즉 서로가 잘 되기를 따뜻하게 바라는 사람들의 네트워크 사이에 자신을 위치시는 것"이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것이, 이 학문이 끊임 없이 인간이 스스로 자립하도록 하는 것을 강조하고 그 방법을 탐구하면서도 동시에 공동체를 강조한다는 것이었다. 자립과 공동체와 고립, 이 3가지를 명확히 정의하지 않으면 혼란이 계속될 뿐이다. 남의 아무 도움도 받지 않아도 혼자 도시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자립이 아니다. 그것은 고립이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 남에게 베풀 수 있고, 남이 베푸는 것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자립이며, 자신은 베풀지 않으려고 하면서 받기만 하려는 것이 바로 자립의 반대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약점을 자기 자신과 분리하여 관찰하고 공생할 줄 알아야 한다. 반대로, 자신의 약점에 굴복한다는 것은 그것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강자는 계속 승리하는 자가 아니다. 몇 번이고 패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진 자이다."

  공동체, 솔직히 말하여 나에게 공동체는 참 어색한 단어다. 물론 독서동아리는 물론 기상스터디 같은 학습공동체에 참여하고 있지만, 사실 공동체를 떠올리면 괜히 뭔가 나에게 부담스러운 요구를 할 것 같고, 내 자유시간을 뺏을 것 같아서 썩 편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것은 공동체 제일주의가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원자화된 개인들은 서서히 철저한 개인주의가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있으며, 점점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탄생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필요한 공동체를 상상하는 것, 단 공동체의 근본 원리인 교환의 속성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동지를 모으는 것. 그 안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것. 대충 그런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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