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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식물학

(독후감) <신갈나무 투쟁기> 차윤정, 전승훈, 지성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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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갈나무 투쟁기. 이 책은 숲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나 숲해설가, 자연환경해설사이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유명한 책이다. 나는 이제서야 이 책을 다 읽어보았다. 난 그동안 대체 뭘 한 것일까?

 이 책이 나온 것이 1999년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4년 전이다. 물론 내가 아직 식견이 많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으나, 지금 서점에 있는 생태 분야 교양서적들 중에 이 책보다 더 충실하고 좋은 내용을 담은 책이 있을까 싶다.

 단지 신갈나무의 삶에 대해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숲 생태계 전반과 식물의 전략, 다른 동물들과의 상호작용, 숲의 변화과정 전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숲을 보면 이전과 다르게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이 좋은 책이라는 것이다.

 일단 이 책을 읽어보고, 그 다음에 다른 책들을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보다 더 편하게 읽히는 책, 이 책보다 더 하나의 생명에 대해 충실하게 기록하고 분석한 책이 있다면 그 책은 정말 좋은 책이다. 이 책을 기준점으로 잡을 만 하다.

 

 물론 이 책을 출판한 이후 한참 시간이 흘러,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과 관련하여 차윤정 작가가 어떤 일을 했는지는 한번 확인해볼만 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그 이후에 있었던 그의 행적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출판된 이후에 있었던 일은 잠시 접어두고, 이 책의 내용만 본다면 작가들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나무. 우리는 나무를 자주 본다. 굳이 숲에 가지 않아도 길거리에 있는 즐비한 가로수들을 매일 마주치고 있다. 그러나 그 평범한 나무 한 그루에 집중해본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나무들은 인간의 배경일 뿐이었다. 나무들이 주인공이었던 적이 몇 번이나 되는가? 우리나라 숲의 새로운 강자로 자리잡고 있는 신갈나무. 등산로에 흔히 보이는 나무이기에 사람들을 그 나무를 흔해빠진 평범한 나무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칠 때가 많다. 아니, 사람들은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관심이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 신갈나무가 주인공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수천개의 도토리가 다람쥐와 청설모의 점심 거리로 사라져 가더라도, 숨이 막힐 듯 하늘을 덮은 키 큰 나무들 때문에 햇빛에 대한 굶주림으로 지쳐가도, 그 단 하나의 도토리는 악착같이 싹을 틔워 하늘을 향해 괴로운 여행을 시작한다.  

 키 큰 소나무가 독한 물질을 뿜어서 괴롭히고, 다래덩쿨과 칡이 호시탐탐 목을 조이려고 하고, 등산객들과 고라니, 멧돼지 같은 동물들에게 밟히기도 하면서도 그 도토리는 뿌리를 내린다. 숱한 위기를 모면하며, 태풍이 들이닥쳐 수많은 가지를 잃어버리면서, 버티고 버티고 버틴 끝에, 그는 마침내 하늘에 맞닿은 숲의 큰 어른이 된다. 그리고 100년의 세월을 버틴다. 그러나 시간 앞에 장사 없듯, 시간이 흘러 결국 신갈나무는 기력을 잃는다. 죽음이 다가온다. 그러나 그 사이에 그가 맺은 열매는 셀 수 없는 동물들을 먹여 살렸고, 그의 자손들은 숲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지난 세월에 대한 후회를 잊은 신갈나무는 점점 썩어간다. 밑동이 썩어가면서 나무는 점점 기울어가고, 결국 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100년 전, 도토리 시절 처음 뿌리를 내렸던 그 땅에 다시 쓰러져 잠든다. 죽어버린 신갈나무의 줄기와 가지는 곰팡이들의 먹이가 되고, 곤충들의 집터가 된다. 그렇게 신갈나무는 다시 다른 생명들을 위한 양분이 되어 사라진다.

 이 책을 숲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추천하며, 아래에는 이 책의 내용 중 인상 깊었던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참나무라는 이름의 나무는 없으며, 참나무속에 속하는 나무들을 일컫는 말임.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나무가 6종 있는데, 잎의 크기에 따라 크게 3부류로 나눌 수 있음.
-잎이 길고 가느다란 형태인 상수리와 굴참이 있는데, 잎의 뒷면이 흰색인 것은 굴참이다.
-중간 크기의 잎을 가진 것은 졸참과 갈참이 있는데, 잎 뒷면에 털이 많은 것이 졸참이다.
-잎이 큰 형태인 것은 신갈과 떡갈인데, 잎이 두꺼운 것은 떡갈이다.
-신갈나무 학명(Quercus mongolica)에서 퀘르쿠스(Quercus)는 좋은 목재를 의미하며, 몽골리카는 몽골 지방에서 자란다는 의미임.
-신갈나무는 참나무 중의 대표이며, 우리나라에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나무임.
-소나무와 신갈나무의 경쟁은 우리나라 산림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장 뚜렷한 생태적 현상임.
-소나무 곧게 자라기 때문에 건축자재로 인기가 많았음. 그 밖에도 소나무는 각종 도구재로 쓰임새가 다양하며 소나무숲에는 송이버섯이 남. 소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는 산을 황장봉산이라고 함.
-황장봉산에는 비석을 세우고, 일부러 작은 산불을 내서 잡목을 죽이고, 사람들이 다니면서 소나무가 아닌 나무는 베어버리며 가꿔왔음.
-나무는 일단 뿌리를 내리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 곳에서 움직이지 못함. 따라서 도토리가 숲에 잘 퍼지는 것은 나무의 일생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임. 
-생물의 번식 전략은 크게 2가지임. 소수정예 방식이 있고,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이 있음. 첫번째는 소수의 자손을 생산하되, 그 자손에게 많은 투자를 하여 튼튼하게 키워내는 것이며, 두번째는 자손 하나에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지만, 그 자손을 엄청나게 많은 숫자로 만들어서 퍼뜨리는 전략임. 일반적으로 오래 사는 나무들은 수명이 짧은 풀들에 비해 자손을 적게 만들기는 하지만, 포유류나 조류에 비해서는 굉장히 많이 만드는 편임.
-아무리 튼실한 도토리를 만들어도 다람쥐나 멧돼지가 다 먹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음.
-신갈나무의 전략은 한번에 다 못먹을 정도로 많은 도토리를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도토리 안에 떫은 맛이 나는 성분을 넣어두는 것임.

-숲이 평화롭다라던가 나무가 아낌없이 준다는 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임. 자세히 보면 덩쿨, 기생식물, 곤충 등 수많은 위협이 존재함.
-작은 잎사귀 하나, 그 잎사귀 하나가 흡수하는 탄소의 양은 적다. 그러나 그 잎사귀 하나 하나가 모여 나무가 되고 숲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숲은 막대한 양의 탄소를 흡수하여 탄소유기물들을 생산하고, 그 탄소유기물들은 인간을 포함한 지구 전체의 생명들을 이끌어온 원동력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그 잎사귀 하나가 가진 광합성 능력이 실로 엄청나 보인다.
-소나무와 신갈나무는 나무의 형태부터 다르다. 소나무는 정아 우세 현상이 강하여 계속 하늘을 향해 높이 솟구친다. 이런 나무들은 원추형의 수형을 가진다. 그러면서 소나무는 다른 식물들이 근처에 자라지 못하도록 타감작용을 하는 화학물질을 내뿜는다. 또한 잘 자라지 못하는 가지들은 스스로 땅으로 떨군다. 그래서 소나무 숲은 층이 그다지 많지 않고, 다른 식물들이 없어서 고요하다.
-그러나 신갈나무 숲은 다르다. 신갈나무는 소나무와 달리 어느 정도 자라고 나면 측아 우세 현상이 나타난다. 즉, 가지가 여러 방향으로 뻗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무는 전체적으로 원형의 수형을 갖게 된다. 신갈나무 숲은 다양한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신갈나무 숲 바닥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게 된다. 식생이 다양하고 층위가 다양하므로 다양한 동물들이 모여 시끌벅적해진다.
-숲은 여러 장소로 나눠져 있다. 그늘지고 습한 곳에는 피나무 무리, 벼랑 끝 암벽에는 소나무, 건조하고 빛이 많은 곳에는 신갈나무 무리가 있다. 신갈나무 근처에는 철쭉이나 당단풍 나무들이 자주 어울리며 간혹 조릿대들이 함께 자라기도 한다. 피나무 주위에는 층층나무, 붉나무, 마가목, 노린재나무, 산초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어울린다.
-낙엽 활엽수림을 대표하는 것은 신갈나무, 철쭉, 당단풍이다. 그 중 당단풍 나무는 크게 자라지 않고 숲의 중간 층을 메우는 나무로 전략을 잡았다. 그래서 줄기를 하늘 높이 내지 않고 머문다. 그런 욕심 없는 태도 덕분에 키 큰 나무들이 즐비한 숲에서도 자신의 영역을 만들 수 있었다.
-나무 조직에 질소 성분이 많으면 빨리 분해되지만, 탄소 성분이 많으면 분해 속도가 느리다. 참나무와 같은 낙엽활엽수들은 질소의 함량이 높기 때문에 30년 정도면 된다. 그러나 소나무들은 100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나무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 숲의 원동력이 된다. 나무가 쓰러지면 숲틈이 생기고, 그 사이로 햇빛이 쏟아진다. 그러면 땅 속에 묻혀 있던 씨앗들이 싹을 내고 자라기 시작한다. 나무 하나가 쓰러질 때 엉켜 있던 다른 나무가 쓰러지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약한 나무들이 함께 사라진다.
-아무 것도 안하는 국회를 식물국회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식물들에 대한 모욕이다. 아무 것도 안하는 식물들은 없으며, 각자가 치열하게 자기 삶을 살아간다.  
-대기 중의 탄소가 많다고 사람들이 난리다. 그런데 그 탄소는 누가 만들어낸 것인가? 바로 인간이 배출한 것들이다. 그런 인간들을 보고 나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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