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1권>의 초판 발행일은 1993년 5월 20일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책을 읽은 것은 참 오랜만인데, 30년 전에 쓰인 오래된 책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아니, 최근에 나온 시덥잖은 문화재 분야 도서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거나 구매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문화유산에 대한 책이자, 사회 문화 비평에 대한 책이자, 답사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책이기도 한 것 같다. 감상과 비판을 함께 다루는 책이다보니, 저자는 자신이 좋아했던 사찰의 풍경을 망쳐놓은 스님들을 거침없이 비난하기도 하고, 정치인들과 재벌들이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이용하는 행태에 대해서도 거친 비판을 쏟아낸다. 여러모로 신선한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깨닫게 된 점은 3가지이다.
1. 평소 나 자신이 문화유산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30년 전에 나온 이 책에 있는 유물들이 대부분 생소했다. 아직 갈 길이 한참 멀다.
2. 옛날에 나온 책이라고 모두 고루한 것이 아니다. 요즘 나온 책들과 비교해서 문장이 훨씬 정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3. 명작은 명작이지만, 그렇다고 이 책의 관점 모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책을 비판적으로 읽자.
이 책에는 문화재 답사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드러나는 내용도 있다. 답사란 단순히 유물을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서 자신과 이웃을 되돌아보는 일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답사를 다니는 일은 길을 떠나 내력 있는 곳을 찾아가는 일이다. 찾아가서 인간이 살았던 삶의 흔적을 더듬으며 그 옛날의 영광과 상처를 되새기고 나아가서 오늘의 나를 되물으면서 이웃을 생각하고 그 땅에 대한 사랑과 미움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런 답사를 올바로 가치있게 하자면 그 땅의 성격, 즉 자연지리를 알아야 하고, 그 땅의 역사, 즉 역사지리를 알아야 하고,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내용, 즉 인문지리를 알아야 한다. 이런 바탕에서 이루어지는 답사는 곧 문화지리라는 성격을 갖는다."
답사 하수는 개별적인 유물 하나를 깊게 공부하는 수준에 머무른다. 그러다가 중수가 되면 눈 앞에 있는 유물을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유물들과 비교하면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고수의 수준에 이르면 유물을 보는 시각이 확장되어 해당 지역의 역사나 문화와 연관지어 종합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또한 유물을 중심으로 그와 관계된 사람들의 과거-현재-미래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인상깊었던 내용에 대한 다른 글들을 링크해두며 독후감을 마친다.
<인상 깊었던 유물 및 이야기>
-이애주 후천개벽무
-불국사 박정희 대통령 신종과 한진 그룹
-이종구와 오지리 사람들
-개심사 심검당 부엌문
-추사 김정희의 명선
-윤종진 묘 동자석
-임천 선생의 수덕사 대웅전 꽃그림 모사도
-도솔암 마애불
-석씨원류
-소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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