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부/역사학

(독후감)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 푸른나무, 2008)

728x90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4409067

 

거꾸로 읽는 세계사 - YES24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베스트셀러의 귀환100만 독자를 사로잡은 ‘이야기의 힘’ 1988년 초판 출간 이후 스테디셀러로 굳건히 자리를 지켰던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절판 이후 새 얼굴

www.yes24.com

 나도 내가 책을 왜 읽는지 잘 모를 때가 많다. 어떨 때는 그냥 잡히는 대로 읽기도 하고, 어떨 때는 꽤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읽기도 한다. 이 책은 후자에 속하는 책이다. 내가 사회복지사가 된다면 어떤 사회사업을 할 것인지 고민하던 찰나에, 우연히 역사를 소재로 사회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컨데 가야문명에 대해 박식한 한 사회복지사는 평일에는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주말에는 지역의 역사학자로 활동한다. 가야문명과 관련된 유적을 복원하여 지역의 역사, 문화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제안서를 정치인들에게 보낸다. 역사, 문화 해설사로 활동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나도 역사에 대해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역사 관련 서적을 찾던 중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유시민이 그냥 정치인인 줄 알았는데, 이런 책도 썼다는 것을 이제 처음 알게 되었다. 1978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한 그는 대학을 졸업하는 데만 13년이 걸렸다.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가 두 번이나 제적당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독일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이 책은 1988년에 출간된 책인데, 역사학자도 아닌 얼치기 역사학도가 쓴 책이라고 작가 스스로 이 책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책이 잘 팔린 것은 사회가 여전히 일그러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그러진 세태를 비판하면서 쓴 책인데, 여전히 사람들이 이 책을 원한다는 것은 사회가 그대로라는 말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라고 했는데, 왜 작가는 이 책을 "거꾸로" 썼을까? 이 책을 쓸 당시, 책을 "올바로" 쓴다는 것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관련 역사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거꾸로" 책을 썼다고 작가 스스로 표현한 것 같다. 확실히 역사 교과서에서는 읽을 수 없었던 내용이 수두룩 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여 "은근히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이념적 편향성"을 이 책에서 많이 발견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밖에 뼈 있는 내용도 많이 있었기에 재밌게 읽었다.


 사라예보 사건, 러시아 10월 혁명, 대공황, 모택동의 대장정, 팔레스타인, 4.19 혁명, 말콤 X, 베트남 전쟁 등 굵직한 사건들에 대한 역사적 기술과 작가의 논평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모두 흥미롭게 읽었는데, 그 중에서 말콤 X에 대한 내용이 특히 흥미로웠다. 다른 내용들과 달리 이 책에서 처음 읽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말콤은 1925년 미국 중부의 도시, 오마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목사였는데, 흑인들에게 조상들의 땅인 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한다고 설교를 하며 다녔다고 한다. 그 이유로 아버지의 다섯 형제 모두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 살해되었고, 말콤의 아버지도 말콤이 7살일 때 백인에게 살해당했다. 말콤의 어머니는 백인 주인에 의해 강간당한 흑인 노예의 딸이었다. 남편을 잃은 그녀는 생활고와 스트레스로 인해 미쳐 버렸다고 한다.


 학교에 들어간 말콤은 처음에는 공부를 썩 잘하지 못했다. 그러나, 중학교에서는 학교 성적이 수석에 오르기도 했고 반장이 되기도 했다. 그는 변호사가 꿈이었는데, 백인 선생님이 "넌 깜둥이라는 현실을 알아야 한다." 라며 모멸감을 주었다. 그 이후 말콤은 젊은 시절을 마약과 강도짓으로 채워 나갔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런데 그 때, 교도소에 수감된 말콤에게 동생 레지날드가 찾아와 이슬람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레지날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백인은 악마야. 형은 자기의 진짜 성도 모르잖아? 백인 악마들이 우리 선조들의 땅에서 살인과 강간을 하고, 말하자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형까지 강탈해 온 거야." 그 말을 듣고 진지한 고민에 빠진 말콤은 자신의 성을 X로 바꿔버렸다. 이슬람교로 개종한 말콤 X는 그 이후로 적극적인 인종분리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당시 미국은 인종차별을 철폐하고 인종을 통합하기 위한 사회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시기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종을 분리하자고 주장하는 말콤은 백인은 물론 흑인들에게도 비판받았다. 흑인들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백인과 흑인이 서로 어울려 사는 것에 대하여, 말콤은 왜 반대했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격리와 분리는 다른 것이다. 격리는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리는 평등한 둘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 미국 흑인들이 백인에 종속되어 있는 한 우리는 언제나 백인에게 일자리와 의식주를 구걸해야 할 것이며, 백인은 우리의 생활을 규제하면서 언제든지 우리를 격리시킬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형제 자매 여러분, 백인들은 우리가 금발과 푸른 눈을 가진 예수만 쳐다보도록 세뇌해 놓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닮지도 않은 예수를 숭배하고 있습니다."

"백인이 흑인에게, '나를 증오하는가?' 라고 묻는 것은 강간범이 강간 당한 사람에게 '나를 증오하는가?'라고 묻는 것과 독같다. 백인은 다른 사람의 증오를 비난할 도덕적 자격이 없다. 우리의 선조들이 못된 뱀에게 물렸고, 나 자신도 사악한 뱀에게 물려서 내 아이들에게 뱀을 피하라고 주의를 주는데, 바로 그 뱀이란 놈이 나더러 증오를 가르치는 자라고 비난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유럽인들은 아프리카로 건너가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만들어 전세계로 수출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끔찍한 일들이 있었는지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1억명 이상이 죽었을 것이라고 이 책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미국으로 팔려 온 아프리카 노예들은 어떤 상황에 처했을까?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백인 주인에게 강간당하고, 채찍질을 당하고, 집단 구타를 당했으며, 흑인은 열등하다는 식으로 백인들에 의해 세뇌당했다. 가축 이하의 처지였다. 아프리카에서 나름대로 부족을 이루고 그 곳에서 문화를 창조하며 살아갔던 사람들인데 말이다. 이 책의 다른 부분에서 묘사된 러시아 농노들의 현실이 문득 떠오른다.


 미국 흑인들이 백인들에 의해 당했던 끔찍한 일들은 말끔히 잊어버리고, 갑자기 평화를 외치며 흑인과 백인의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말콤 X의 눈에는 지극히 기만적인 일로 보이지 않았을까. 이미 백인이 모든 사회경제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상황에서, 백인들이 노예들을 희생시켜 이룩한 부와 권력은 포기하지 않은 채 평등을 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주장을 하는 흑인들은 이른바 "성공한 흑인들" 혹은 "백인화된 흑인들" 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일제강점기에 일본인과 조선인의 평등을 주장했던 사람들을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일은 일본인들이 한반도에서 나가는 것이고, 일본과 조선을 분리해야 하는 일이지 뜬금 없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평등이 아닌 것이다. 애초에 잘못 끼워진 단추는 모른 척 하는 기만적인 일 아닌가.

이 세상엔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728x90